미술 전시회 1 ( Art Exhibition 1 )
자신을 빛내려는 작가의 생각은 어디에 갇혀있는가
현실에 대한 모방
눈에 보이는 세상이 작가의 손을 거쳐 변화된다.
부엉이 / mixed media [ watercolor, colored pencil ] ( 31.8 x 46.8 ) 2012
untitled / oil on canvas ( 53 × 40.9 ) 2014
사과 / acrylic on canvas ( 53 × 45.5 ) 2015
귤이 있는 정물 / oil on canvas ( 45.5 × 39.9 ) 2016
포도가 있는 정물 / oil on canvas ( 45.5 × 39.9 ) 2016
수박 / oil on canvas ( 40.9 × 27.3 ) 2016
사물을 본다, 풍경을 본다 그것은 곳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면밀히 탐구하여 작가는 평면위에 표현했다.
작가 자신이 세상을 보며 말하는 시각적 언어이며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의 감성이다.
사실적인 그림을 그린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현실을 표현한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현실 그대로를 옮겨놓는다.
사람의 눈은 아주 오래 전부터 발전 되어온 기관이다. 사진기보다 뛰어나며
그 생명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모방한다.
아무 생각없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원근감, 명암, 구도, 형태, 색감, 질감 등
현실을 표현하기위해 치밀하게 계산한다.
저 마다의 차이가 있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고도의 훈련을 통해 사진기를 뛰어 넘는다.
혹은 그 가까이에 다가간다. 작가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보여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고싶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싶다.
현실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서 현실을 배경으로 생각이나 의견 감정을 전달하고싶다. 변화한다.
자신을 더 잘나타낼 수 있는 형태로 생각과 감정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한다.
그렇게 계속해서 발전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에서 다른 형태들이 탄생한다.
우리는 왜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 훈련을 받는가 자신의
머리속의 생각과 형상을 보다 더 잘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머리속의 생각과 형상이 작가의 손을 거쳐 만들어질때 열화되어서는 안된다.
정신과 육체가 더해져 더욱 가중되어야한다.
고도의 훈련은 자신의 정신을 표현하는데 다양성을 가져온다. 혹자는 고도의 훈련이 작가가 될 새싹의
상상력과 생각을 죽인다고 이야기한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사람을 창의력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말도 안돼는 소리이다. 스승을 잘못 만났거나 모든 사람의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 할 수는 없지만
각자의 이유에 의해서 창의력을 상실해버린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현실의 가치가 매겨질때와 노력해온 경쟁자들과 경쟁을 할때 부정한 것들에
의해 자신의 노력에 대해 상실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어디에나 경쟁은 있습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 특별할 수는 없습니다. 예술이 현실의 도피처 이기에 상상력으로 세상을 사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예술은 도피처가 아닙니다. 다른 분야를 제외하고 예술만이 다른 업계보다 높게
취급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비교받기 싫으면서 남은( 다른 업계 ) 일단 깔아내리고 남의 문제를
자신의 변명의 예시로 사용하고 결국 자신만이 잘난 사람이라는 미친 사상은 문제입니다.
자신이 능력을 만들기 힘드니 과대 포장과 거짓말을 합니다.
예술인은 자신의 생각이나 이미지로 불규칙적인 상업적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맞습니다.